앨런 오스몬이 76세를 일기로 1일(현지시간) 별세했다. 여러 매체에 따르면, 앨런은 별세할 때 아내 수잔과 아들 8명이 곁에 있었다. 40년 전 허리디스크 진단을 받고 공연을 그만두었지만, 그룹의 창의적 방향과 유산을 계속 이끌었다.

음악과 형제애의 유산

앨런은 형제들과 함께 ‘원 배드 애플’, ‘크레이지 호스’, ‘아레 유 업 써?’ 등의 히트곡을 써내며 오스몬드를 세계적인 가족 밴드로 성장시켰다. 그는 형 메릴과 함께 프로보에서 미국 최대 규모의 독립기념일 축제 ‘스테디엄 오브 파이어’를 창안하기도 했다.

오스몬드의 음악 활동은 1950년대 유타 주 오거던에서 시작됐다. 앨런과 형제들은 4인조로 활동하며 1962년 ‘디즈니 애프터 더크’에 출연해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앤디 윌리엄스 쇼’에 정기적으로 출연하며 건강하고 가족 중심의 이미지를 확고히 했다. 1970년대 초반에는 1년 동안 9개의 골드 레코드를 기록하며 엘비스와 비틀즈를 넘어섰다.

가족 생활과 마지막 날들

앨런은 51년간 함께한 아내 수잔, 아들 8명, 손자 30명, 조카 5명을 남겼다. 형제로는 빌, 톰, 메릴, 제이, 도니, 잼미와 누나 마리도 생존했다. 부모님과 형 웨인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최근 몇 년간 앨런은 휠체어를 타며 집중 치료를 받았다가 집에서 완화 치료를 받았다. 가족은 앨런이 생전에 웨인 형과 다시 만나고 싶어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여전히 함께 할 일이 많아 — 오래도록 바쁘게 채워줄 만큼 일이 많다”라고 말했다.

추도와 추억

메릴 오스몬드는 앨런을 “재능 있는 창조자. 신앙 깊은 사람. 따뜻한 영혼”이라고 칭찬했다. 팬들의 지지에 감사 인사를 전하며 앨런의 기억을 기릴 것이라고 말했다. 도니 오스몬드는 앨런이 형제들을 보호하고 이끌어주는 역할을 했다고 회상했다, but “앨런은 말 그대로 우리를 이끌어준 리더였다. 그의 열정적인 노력이 우리가 된 모든 것의 기반이 됐다”라고 썼다.

앨런 오스몬드는 1958년 형제들로 구성된 바버숍 콰텟에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동생 도니와 잼미가 합류하며 가족의 음악적 성공을 이끌었다. 그의 기여는 1960~70년대 미국 대중문화의 핵심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