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바카르 시디 디아키테(이름은 투마바로 알려짐)는 2009년 기니 콘라리 경기장에서 발생한 학살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10년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던 2024년 4월 3일, 병원에서 의료 응급 상황으로 인해 사망했다고 수감 당국이 발표했다. 그는 당시 150명 이상이 사망하고 최소 109명의 여성들이 강간당한 사건에 직접 관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디아키테는 당시 기니를 지배했던 군부 정권의 핵심 인물이었다.
수감 중 논란의 인물
수감 중에도 디아키테는 여전히 논란의 인물로 남았으며, 정치 당을 창당하고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려는 시도를 했다. 지난해에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으나, 최고법원은 그의 출마 자격을 부정했다. 학살 당시 디아키테는 대통령 경호병의 사령관이었으며, 이전 군부 지도자 모우사 다디스 카마라의 가까운 동료였다.
수감 당국은 디아키테가 2024년 4월 2일 밤 콘라리의 샘وري 투레 군 병원으로 이송된 후, 3일 아침 병원에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그의 의료 보고서에 따르면, 위장 부종, 복통, 변비 등의 증상이 확인됐다. 이 사건은 기니에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기억으로 남아 있으며, 여전히 정의를 요구하는 이들이 많아 사망 소식에 대해 다양한 반응이 나타났다.
2009년 학살 사건의 유산
2009년 9월 28일, 수만 명의 시민들이 콘라리의 경기장에 모여 카마라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는 소식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카마라의 지시로 경찰과 군대가 시위대를 향해 총을 발사했으며, 이로 인해 150명 이상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당했다. 사법 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최소 109명의 여성과 소녀들이 강간당했다.
AFP 통신에 따르면, 학살 직후 카마라가 머리에 총을 맞았으며, 이 사건은 디아키테의 책임으로 지목됐다. 이후 디아키테는 해외로 도주했으며, 2016년 12월 세네갈에서 가명으로 생활하던 중 체포됐다. 그 후 1년 뒤 기니로 송환됐다.
카마라는 12년간 해외에 망명한 뒤 재판을 받기 위해 귀환했으며, 22개월간의 재판 끝에 2024년에 그와 함께 7명의 장군들까지 유죄 판결을 받았다. 카마라는 인도주의 범죄로 20년형을 선고받았으나, 지난해 3월 현재 대통령 마마디 두umbo야에 의해 건강 문제를 이유로 특별 사면을 받았다.
미해결된 정치적 긴장
디아키테의 사망은 기니의 정치적 상황에서 미해결된 긴장이 여전히 존재함을 강조했다. 이전 군부 인물들은 권력을 떠난 후에도 여전히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정의, 화해, 정치적 야망 사이의 경계는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기니는 독립 이후 여러 번의 불안정 기간을 겪었으며, 군사 쿠데타, 의심스러운 선거, 반항에 대한 폭력 진압 등으로 특징지어졌다. 공식적으로 민간 정권으로 돌아선 이후에도 과거의 악행에 대한 대응은 느리고, 때로는 깊은 분열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았다.
2010년, 학살 직후 알파 콘데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으며, 2021년 쿠데타로 콘데가 물러난 뒤, 두umbo야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 디아키테의 사망은 기니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기 중 하나에 대한 책임과 그 운명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제기한다.
수감 당국에 따르면, 디아키테는 콘라리의 샘وري 투레 군 병원에서 사망했다. 그의 의료 보고서에 따르면 위장 부종, 복통, 변비 등의 증상이 확인됐다. 이 사건은 기니에서 2009년의 폭력이 여전히 정치적으로 민감한 기억으로 남아 있으며, 많은 이들이 여전히 정의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양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한 정치 전문가는 BBC에 “그의 죽음은 한 시대의 종말”이라고 말하며, “그가 죽었지만, 진실도 함께 죽었다”고 덧붙였다. 2009년 학살은 기니 역사상 어두운 장면으로 남아 있으며, 150명 이상이 사망하고 109명의 여성들이 강간당했다. 디아키테는 이 사건의 중심 인물이었으며, 이후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의 죽음은 책임과 정의에 대한 지역 내 논의를 다시 일으켰으며, 많은 이들이 학살의 진실이 결국 드러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기니의 정치적 상황은 여전히 복잡하며, 이전 군부 지도자들은 법적 결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국가가 앞으로 나아가면서 2009년 학살 사건과 디아키테 같은 인물의 역할은 기니의 정치적 미래를 형성할 것이다. 과거의 악행에 대한 대응 노력은 기니와 그 국민의 앞으로의 길을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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