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샤 보슬레가 92세로 생을 마감했다. 그녀의 아들에 따르면, 보슬레는 심장마비로 병원에 입원한 후 뉴델리에서 사망했다. 그녀는 빌리우드의 상징적인 목소리로 알려져 있으며, 80년 이상의 활동을 통해 12,000곡 이상을 발표했다.
음악의 유산
보슬레는 80년 이상의 음악 활동을 통해 12,000곡 이상을 녹음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수많은 영화 음악에 생명을 불어넣었으며, 빌리우드의 음악적 정체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녀의 음악은 세대를 넘나들며 팬들에게 사랑을 받았으며, 그녀의 음악을 따라 춤을 추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녀의 사망 소식은 소셜 미디어에서 많은 추모를 불러일으켰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그녀를 ‘인도 역사상 가장 아이코닉하고 다재다능한 목소리 중 하나’라고 칭하며, 그녀의 ‘이상적인 음악적 여정’이 국민의 문화적 유산을 풍요롭게 하고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다고 밝혔다.
협업의 천재
보슬레는 작곡가 RD 버만과의 협업을 통해 빌리우드 역사상 가장 아이코닉한 콜라보레이션을 이루었다. 이후 두 사람은 결혼했으며, 그들의 음악은 다양한 장르에서 히트를 거두며 산업을 혁신했다.
2023년 인터뷰에서 보슬레는 버만이 그녀의 음악적 가능성을 최대한 끌어내어 주었다고 회상했다. ‘오직 팬차만이 내가 가수로서의 범위를 얼마나 넓게 가질 수 있는지를 발견해 줬다. 팬차가 나 자신 안의 목소리 깊은 곳을 탐색하도록 이끌기 전에는, 나는 목소리로 이렇게 유연하게 노래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보슬레의 목소리는 버만의 실험적이고 다양한 음악과 완벽하게 어울리며, 다양한 장르에 걸쳐 수많은 히트곡을 만들어냈다. 두 사람은 25년간의 협업을 통해 음악 산업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음악과 투지의 삶
보슬레는 1933년 9월 8일 마하라슈트라 주 고아에서 태어났으며, 연극 배우이자 클래식 가수인 아버지 디나나트 만게스커르의 가정에서 자랐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음악을 시작했으며, 1943년 마라티어 영화 ‘마자 바알’에 처음 노래를 불렀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그녀의 음악적 활동은 급속히 확장되었으며, 다양한 장르에서의 다재다능한 아티스트로 성장했다. ‘아이예 메어바안'(1958), ‘파르데 메인 레하네 도'(1968), ‘둠 마로 덤'(1971) 등은 그녀의 음악적 성과 중 일부이다.
그녀의 개인 생활도 그녀의 음악적 성공만큼 화려했다. 16세 때 이웃인 간파트라오 보슬레와 도주했으며, 이후 불안정한 결혼 생활을 하다가 1960년 세 아이의 어머니로 혼자 남았다.
그녀는 무함마드 라피, 키쇼르 쿠마르, 마나 데이 등과의 듀엣 음악이 오늘날까지도 고전으로 남아 있다. 어려움을 극복하며 그녀는 2020년 온라인 탤런트 쇼 ‘아샤 키 아샤’를 시작했으며, 유튜브 채널도 개설했다.
그녀는 2023년 뉴델리에서 90세 생일을 축하하며 라이브 콘서트를 열었다. 그녀는 콘서트 전 인터뷰에서 ’90세에 무대에서 3시간을 서서 노래하는 것은 축복이다’라고 말했다.
그녀의 마지막 녹음 중 하나는 영국 가상 밴드 고릴라즈의 2026년 앨범 ‘더 마운틴’에 참여한 것으로, 슬픔, 죽음, 영적 전환을 주제로 한 곡이다. 이 곡 ‘더 샤플로우 라이트’는 그녀의 음악적 여정의 마무리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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