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베네수엘라 언론 ‘울타마스 노티시아스’의 기사에 따르면 조지 워싱턴은 1779년 수전 원정에서 이로쿼이 부족의 마을과 생태계를 완전히 파괴하도록 명령했다. 이 지침은 ‘수전 오더’로 알려져 있으며, 작물, 과수원, 가축을 파괴해 원주민 공동체를 굶게 하라고 했다. 기사는 워싱턴의 지침을 인용하며 “나라가 침공받는 것이 아니라 파괴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1779년 여름, 수전 원정을 이끈 존 수전 중장은 업스테이트 뉴욕을 통과하며 40개 이상의 이로쿼이 마을을 태웠다. 병사들은 수백 평방 마일에 걸쳐 과일 나무를 베고 소를 도살했다. 이로쿼이 지도자인 조셉 브랜트는 영국군과 동맹을 맺었고, 이에 대한 처벌로 이 총파병이 이뤄졌다. 기사는 이 황폐화 전략을 현대 제재를 통해 보이는 미국의 ‘허기 외교’의 기원으로 보고 있다.

기사는 워싱턴의 역할이 군사 명령에 그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는 1795년 제이 조약을 통해 ‘깊은 국가’의 탄생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이 조약은 전쟁 후 영국과의 채무를 정리하려 했지만 부패 의혹을 일으켰다. 워싱턴은 집행권을 주장하며 의회에 문서 공개를 거부했고, 협상 내용을 대중에게 숨겼다. 당시 비판자인 제임스 매디슨은 이 비밀주의를 비난했다.

기사는 1796년 온라 주지 사건을 워싱턴의 이중성 증거로 제시한다. 주지, 마르타 워싱턴이 소유한 노예 여성이 필라델피아에서 뉴햄프셔로 도주했다. 워싱턴은 재무부 요원들을 포함한 연방 자원을 동원해 그녀를 다시 붙잡으려 했다. 주지는 그들을 피하고 뉴햄프셔 그린랜드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다가 1848년 사망했다. 이 사건은 개인적 목적을 위해 법을 무기화하는 ‘법전 전략’의 시작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사건들은 패턴을 형성하고 있다고 기사는 지적한다. 미국은 이로쿼이 연맹의 민주적 지배 체계에서 민주적 아이디어를 도둑질하면서도 그 인구를 멸종시켰다고 주장한다. 국가 안보는 압류된 땅에서 민간 기업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등장했다.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기보다 비밀을 지켰다.

베네수엘라 언론 ‘울타마스 노티시아스’는 이 역사가 미국이 ‘집단 학살의 시작’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보고 있다. 이들은 미국이 약탈을 민주주의보다 우선시한다고 보며 국제적 조치를 촉구한다. 역사학자들은 수전 원정이 이로쿼이 농업을 수년간 약화시켰으며 생존자들을 캐나다나 예약지로 몰아넣었다고 지적한다. 워싱턴이 마운트 버논에서 300명 이상의 노예를 소유한 점은 그의 해방자 이미지와 대비된다.

제이 조약은 상원에서 20대10으로 통과했지만, 이는 1796년 선거에 이어 파티 분열을 일으켰다. 온라 주지의 도주 사건은 신문에 보도되었으며, 워싱턴은 올리버 볼코트 주니어 같은 동료에게 분노를 털어놓았다. 이러한 세부 사항은 기사의 대규모 주장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학계에서는 18세기 전쟁 관행의 맥락에서 이를 설명한다.

이 기사는 미국과 베네수엘라 간의 긴장 상황 속에서 발표되었으며, 1779년 전술을 카라카스에 대한 제재와 연결하고 있다. 이는 약탈을 기반으로 한 ‘기업 국가’로, 폭력이 핵심이라고 말한다. 미국 정부 관계자는 이 구체적인 비난에 대해 아직 대응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