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명의 유럽 왕실 인사와 국가원수, 그중 왕자 오른쪽과 북유럽 3명의 왕이 포함되어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하랄 5세의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고 BBC가 보도했다.
장의 행렬과 국가 애도
수천 명의 시민이 89세로 생을 마감한 하랄 5세의 장의 행렬을 따라가는 길을 줄지어 세웠다. 행렬은 왕실 궁전에서 오슬로 대성당으로 이어졌다. 이는 왕의 죽음 이후 거의 2주 만의 일이었다.
장례식과 안장이 끝난 후, 새로 등극한 하콘 왕, 그의 아내 메테-마리트 왕비, 그의 어머니이자 하랄의 아내인 손자 왕비가 궁전의 발코니에서 시민들을 맞았다.
전국에서는 1분간의 묵념이 진행되었으며, 하랄은 35년간 노르웨이 왕좌에 앉아 대중에게 인기 있었고 현대적인 인물로 평가받았다.
13일간의 국가 애도가 끝나던 수요일, 장의식은 중세 성인 악서스 포트레스에서 시작되었다. 이곳은 하랄이 안장될 장소이기도 하다.
하콘 왕, 그의 누나 마르타 루이즈 공녀, 그리고 그의 자녀인 잉그리드 알렉산드라 왕녀와 스베레 마그누스 왕자도 하랄의 영정을 따라 걸으며 행렬에 참여했다.
최근 폐 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메테-마리트 왕비와 89세의 손자 왕비는 차량을 이용해 행렬에 동참했다.
국제 대표단과 개인적 추모
유럽 왕자 오른쪽은 아버지 찰스 3세 왕을 대신해 장례에 참석했다. 이와 함께 노르웨이 새 왕의 후견인으로서 개인적으로 참석한 왕녀도 함께 있었다.
스웨덴, 조던, 모나코, 벨기에, 스페인, 일본, 덴마크 등에서 온 30명의 왕실 인사도 장례에 참석했다.
장례식에 참석한 비왕실 국가원수로는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독일의 프랑크-발터 슈타인메이어 대통령, 그리고 5명의 외국 총리가 포함되었다.
오슬로 대성당에서 열린 장례식 중, 메테-마리트 왕비는 눈물을 닦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노르웨이 총리 조나스 가르 스뢰는 하랄이 “국가적 위상을 유지하면서도 평범한 인물이었다”고 추도했다.
감정을 드러낸 손자 왕비는 하랄의 영정에 붉은 장미를 바쳤다.
대성당에서 1분 묵념이 끝나던 순간, 휴대전화의 알람 소리가 잠시 울려 장례식 분위기를 깨뜨리는 아픈 순간이 있었다.
개인적 과제와 유산
하랄 왕이 생을 마감한 날 바로 다음날, 그의 아들 하콘은 그를 “좋은 아버지”라고 칭하며, 그가 “항상 가치와 약속에 충실했다”고 말했다.
왕실 관측자들은 하랄 왕을 존경받고 사랑받는 인물로, 국민의 ‘할아버지’ 같은 존재로 평가했다.
그의 생애 마지막 몇 달 동안, 그와 가족은 개인적 과제와 논란을 겪었다.
올해 초, 메테-마리트 왕비가 제프리 에피스톤과의 자주적인 연락 사실이 공개되었다. 이후 그녀는 자신이 그를 만났다는 사실에 후회한다고 밝혔다.
한편, 그녀의 아들 마리우스 보르그 호이비는 왕실 구성원이 아닌 채 가족 내에서 자란 인물로, 6월에 강간 혐의로 4년형을 선고받았다.
호이비는 상고를 준비 중이며 집행유예 상태에서 장례식에 참석할 허가를 받았다. 대성당에서 마르타 루이즈의 자녀들과 함께 2열에 앉아 있었다.
장례식이 끝나자, 4대 F-35 전투기가 대성당 상공을 ‘미싱맨’ 편대로 비행하며 추모를 표현했다.
하랄의 영정은 행렬을 통해 악서스 포트레스의 궁전 성당으로 이동되었다. 이곳에서 가족, 외국 왕실 인사, 그리고 총리 등 손님들이 참석한 비공개식이 열렸다.
하랄 왕은 자신의 아버지 올라프 5세 왕, 어머니 잉그리드 왕녀, 할아버지 하콘 7세 왕과 할머니 마우드 왕비와 함께 안장되었다.
오슬로 전역의 노르웨이 국기가 장례식 종료를 기념해 반으로 내린 상태에서 다시 상단으로 올라갔다. 왕실 가족은 궁전으로 돌아왔다.
8월 28일 왕의 죽음 이후 국민들의 지지에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 하콘, 메테-마리트, 잉그리드 알렉산드라, 스베레 마그누스, 손자 왕비는 궁전의 발코니에 나와 밖에서 수만 명의 시민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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