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중국으로의 이양
1997년 7월 영국이 홍콩을 중국에 반환할 때, 톄 츄화는 마지막 영국 총독 크리스 패튼에게 권한을 이어받았다. 영국의 통치는 150년 이상 이어졌다.
그의 임기 동안 아시아 금융위기, 두 차례의 주요 전염병, 역사적인 시위 등이 발생했으며, 그의 정부는 비판을 받았다. 그는 2005년 결국 사임했다.
지난 화요일 밤, 가족들에 둘러싸인 채 톄 츄화는 별세했다. 현지 언론이 전했다. 그의 사무실은 그를 “국가와 국민에게 헌신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초기 생애와 경력
1937년 상하이에서 태어난 톄 츄화는 영국 리버풀 대학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후 미국으로 이주해 제너럴 일렉트릭에서 거의 10년간 근무했다.
1969년 홍콩으로 이주한 그는 아버지의 해운 회사인 동방 해외운송회사에서 일하다가 1979년 회사 운영을 맡게 됐다.
그의 정치 경력은 1992년 패튼의 행정자문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면서 시작됐다. 정치 경험이 거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중국 정부의 지지 아래 홍콩의 지도자로 선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1996년 1월 중국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행사에서 중국 국가주석 장쩌민은 인파를 헤치고 톄 츄화의 손을 잡아 흔드는 모습이 사진으로 포착되기도 했다. 이는 베이징이 그를 지원한다는 신호로 해석됐다.
통치 중의 과제
아시아 금융위기는 톄 츄화가 집권한 직후 발생해 주택 가격이 급락했다. 그의 정부는 1997년부터 2002년까지 조류 인플루엔자와 2003년 사스(SARS) 같은 공중보건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의 두 번째 임기 중 가장 큰 정치적 과제는 2003년 7월, 50만 명이 넘는 홍콩 시민들이 국가보안법 제안에 반대하며 거리로 나선 것이었다. 이 법은 시민권이 위협될 수 있다는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대규모 시위가 일어난 후 정부는 제안을 철회했으며, 이는 톄 츄화가 2005년 3월 사임하는 데 기여했다. 당시에는 건강 악화가 사임 이유로 제시됐지만, 일부는 베이징의 압력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베이징은 2020년 홍콩에 국가보안법을 강제로 시행했다. 정부는 안정 유지에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비판자들은 이 법이 “홍콩의 종말”이라고 말하며, 도시 내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지적한다.
톰 츄화의 마지막 공식 활동은 2021년 7월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 행사였다. 이후 그는 심장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아내와 세 자녀를 남겨놓았다.
홍콩의 전직 총재들은 톄 츄화를 기렸다. 2012년부터 2017년까지 홍콩을 이끈 렉 찬잉은 그를 “이성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는 지지적인 리더”라고 평가했다.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총재를 맡았던 캐리 램은 톄 츄화의 리더십이 “역사적인 기여로 지속적인 효과를 냈다”고 말했다.
중국 공영 통신사 신화사는 톄 츄화를 “유명한 애국자, 뛰어난 사회운동가, 중국 공산당의 가까운 친구”라고 평가했다.
신화사는 또한 톄 츄화가 중국 최고 정치자문기구인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부의장직을 4연임하며 역임한 것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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