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네갈 다카르 – 경기 시작 전, 다카르는 침묵 속에 있었다. 두려움이 아닌 기대감 때문이었다. 국민들은 숨을 멈추고 경기를 기다렸다.

다카르 곳곳에서는 라디오가 창문에서 삐죽 나왔다. 카페에서는 어깨를 맞대고 앉은 남자들이 텔레비전 화면을 응시했다. 가족들은 거실에 몰려 앉았고, 친구들은 핸드폰을 들고 차가 식을 만큼 집중했다.

초반 승리, 조기 축하

다카르의 일상적인 리듬, 경적 소리, 시장의 소음, 논쟁, 웃음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다만, 더 큰 무언가에 양보한 것이었다. 세네갈은 월드컵 16강전에서 벨기에와 맞붙었다.

경기 25분, 다카르 교외에서 온 소년 하비브 디아라가 국가의 불안을 해소시켰다. 그는 떨어진 볼을 벨기에 골키퍼를 넘어뜨리며 1-0으로 앞서나갔다.

미국 시애틀에서 8,000km 떨어진 곳에서, 다카르가 경기장이 되었다. 세네갈이 두 번째 골을 넣으며 축하는 커졌다. 자신감은 안일로 변했다. 종료 시간 5분 전, 차량 경적과 폭죽 소리가 밤을 울렸다. 승리가 가까웠다.

벨기에 반등으로 희망 무너져

하지만 축하는 너무 이른 것이었다. 벨기에가 한 골, 다시 한 골을 넣었다. 다섯 분 만에 놀라운 반등을 이뤘다. 연장전 마지막 순간, 세네갈은 페널티킥을 허용하며 3-2로 패배했다.

하루가 지나도 침묵은 이어졌다. 애도보다는 믿기 어려움이 더 컸다.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 전 세네갈 국가대표 축구선수 페르디난드 콜리는 “85분까지 경기를 완전히 주도했으면 끝내야 한다. 하지만 심리적으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콜리는 전환점은 벨기의 반등이 아니라 세네갈 감독진의 결정이라고 본다. “수비수 교체로 미드필드가 완전히 바뀌었다. 교체 이유가 없었다. 벨기가 득점하자 심리적 우위를 차지했다. 세네갈은 약해졌고, 두려움에 떨며 회복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콜리는 2002년 월드컵에서 프랑스를 놀라게 한 세네갈 팀의 일원이다. “끝날 것 같지 않다… 마지막 휘슬이 나올 때까지”라고 그는 벨기의 극적인 반등을 되돌아보았다.

국가적 성찰

은퇴한 콜리는 축구화를 벗고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는 세네갈 축구연맹과도 일하며, 국가대표팀이 기본을 잃었다고 본다. 그에게 문제는 재능이 아니라 준비다. 그는 데이터, 통계, 성과 앱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현상에 비판한다. 대신, 일관된 팀 정체성과 명확한 전략 개발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벨기의 동점골을 찾는 동안, 감독은 종이에 계속 메모를 적으며 마지막 순간까지 조정하고 대응했다. “대조가 크다”고 콜리는 말했다. “우리는 기술에 의존하지만, 축구는 여전히 경기를 읽고 적응하며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축구는 단순히 축구가 아니다. 이 월드컵은 결합을 목적으로 했지만, 관중 밖의 심오한 불평등을 드러냈다. 승리로 국민은 결집할 수 있지만, 심판의 종료 휘슬이 울리면 또 다른 경기가 시작된다. 책임 경기다.

“축구는 대중의 마약”이라고 콜리는 말했다. 정치적 충성심이 사라지는 드문 순간이 되었다. 90분 동안 모두가 같은 색을 입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