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브 데이비스. 20세기 주요 아티스트를 발견하고 육성한 영향력 있는 음악계 인사가 9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가족과 관계자들에 따르면 뉴욕에서 호흡기 문제로 인해 평온하게 생을 마감했다.

70년에 걸친 경력

데이비스는 변호사로 경력을 시작한 뒤 음악 산업으로 전향해 컬럼비아와 RCA 등 레이블에서 주요 직책을 맡았으며, 이후 아리스타와 J 레코즈를 설립했다. 그의 경력은 70년 이상에 달한다. 그는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를 발굴했으며, 그중에는 Whitney Houston, Janis Joplin, Bruce Springsteen, Billy Joel, Barry Manilow, Alicia Keys 등이 포함된다.

NPR에 따르면, 데이비스는 19살의 휘트니 휴스턴을 계약하며, 그녀가 Dolly Parton의 곡을 커버할 때 40초의 아카펠라로 시작하도록 고집했다. 그는 Patti Smith, Santana, Aerosmith 등 아티스트의 경력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그의 뛰어난 감각과 비즈니스 감각은 여러 세대의 음악 스타일을 정의하는 데 기여했다.

혁신과 영향력의 유산

데이비스는 1974년 설립한 아리스타 레코즈를 통해 현대 팝 음악의 흐름을 형성하는 데 중심 역할을 했다. 아리스타에서 그는 휘트니 휴스턴과 바리 마니로 등을 계약했으며, 그의 레이블은 R&B가 가미된 팝 음악의 중심지가 되었다. FAZ에 따르면. 그는 경력 동안 300개 이상의 1위 히트곡을 책임졌으며, 2000년에는 비공연자 부문에서 록 앤 롤 홀 오브 페이머스에 입회했다.

그는 수많은 상을 수상했는데, 그중에는 2000년 그래미 트러스트 어워드와 2009년 그래미 대통령 메ritt 어워드가 있다. 그래미 박물관은 2011년에 그의 이름을 딴 극장도 마련했다; NYCultureBeat에 따르면, 데이비스는 곡을 ’30초 또는 3분의 마법’으로 보았으며, 이 철학은 히트곡이 되기 전에 그를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개인 생활과 마지막 날들

1932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데이비스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이었던 크라운 하이츠에서 자랐다. 뉴욕 대학교에 장학금으로 입학했지만, 대학 시절에 부모님을 잇따라 잃었으며, 이후 그 경험을 매우 깊이 있게 느꼈다고 말했다. 하버드 대학교 법학 석사 과정을 마친 뒤 법률 회사에서 일했지만, 그 일을 흥미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컬럼비아 레코즈에서 인하우스 변호사로 일하는 제안을 받고 음악 산업에서의 경력을 시작했다.

LOS40에 따르면, 데이비스는 50년 이상 음악 산업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로 남아 있었으며, 대중 앞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는 세부 사항에 대한 꼼꼼한 주의와 히트곡이 되는 요소에 대한 깊은 이해로 유명했다. 후년에는 뉴욕에서 화려한 90회 생일 파티를 열었으며, 이 사건을 기념하는 미니 다큐멘터리도 제작했다. 그의 유족으로는 이전 두 차례의 결혼에서 낳은 네 명의 자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