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인권특별장관인 파올라 플라자 판사는 피드로 에스피노자, 호세 자라, 라울 이투리아가의 1976년 워싱턴 DC 자동차 폭탄 테러로 로니 카펜 모피트(당시 25세)를 살해한 혐의로 각각 15년형을 선고했다. 이들은 피노체트 정권의 비밀 경찰인 디나(DINA) 소속이었으며, 정치적 반대자들을 국내외에서 추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범인과 배경

에스피노자와 이미 수많은 인권 침해 혐의로 500년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이투리아가는 이미 고보안 감옥에서 수감 중이었다. 자라는 2023년 8월 15년형을 마치고 석방되었으나, 법원의 판결에 따라 다시 체포되었다.

역사적 배경과 희생자

폭탄 테러는 1976년 9월 21일 오랜델레와 모피트가 출근하던 중 발생했다. 사건은 매사추세츠 애비뉴 북서쪽에서 차량이 코너를 돌던 중 발생했다. 오랜델레는 전 칠레 외무장관이자 미국 주재 대사였으며,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며 피노체트 정권을 비판했다. 그는 테러 발생 11일 전인 1976년 9월 10일 미국 정부에 의해 시민권 박탈당했다.

법원 판결에 따르면, 디나 수장 마누엘 콘트레라스를 중심으로 한 특수부대원들은 해외에서의 사법 절차 없이 살해 계획을 세웠다. 오랜델레의 살해 사건은 별도로 조사되었으나, 모피트의 사건은 범인들이 칠레 국민이라는 점에서 별도의 수사가 필요하다고 법원이 판단했다.

2026년 3월까지 워싱턴 DC 주재 칠레 대사로 재직한 후 조나탄 가브리엘 발데스는 소셜 미디어에 다음과 같이 게시했다 — “정의는 49년 97일 만에 이뤄졌다”고 쓴 그는, 모피트가 일하던 정책 연구소에서 그녀의 밝은 인사말을 떠올렸다.

광범위한 영향과 반응

1990년대 칠레 군 상층부 여러 인물들이 이 사건과 관련해 유죄 판결을 받았다. 미국 시민인 마이클 타운리가 디나와 공모해 1978년 살해에 가담한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2012년 산티아고 항소법원은 모피트 사건이 칠레 국민 범인들에 의해 발생했기 때문에 재수사가 필요하다고 판결했다.

모피트의 조카 레베카 카펜은 보도자료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 판결은 우리 가족의 승리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인생을 파탄내었던 피노체트 정권의 희생자들이 여전히 싸우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일이다. 칠레 국민들의 고통은 결코 잊히지 않을 것이다.” 오랜델레의 아들 주안 파블로 오랜델레는 미국이 나머지 범인들에 대한 정의를 추구할 것을 촉구했다.

오랜델레는 1975년 1월 미국에 도착하기 전. 패티고니아의 냉대 섬에 수용소에 갇혀 있던 후, 칠레 중부 해안의 다른 섬으로 이동되었다. 미국에서 시민권이 박탈된 날,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반피노체트 집회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나는 칠레인으로 태어났고, 칠레인으로 살며, 칠레인으로 죽을 것이다. 그들은 배신자로 태어났고, 배신자로 살아가며, 영원히 페시스트 배신자로 기억될 것이다.”

1976년 워싱턴 DC에서 발생한 테러는 칠레와 미국 간의 관계를 악화시켰다. 미국은 이전에 피노체트 정권의 1973년 9월 11일 쿠데타를 지원했으며, 내부 압력으로 정권과 거리를 두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었다. 폭탄 테러에 대한 대응으로 미국 의회는 살해 사건을 조사하고, 칠레에 대한 무기 수출 금지를 결정했다. 피노체트 정권은 디나를 해체했지만, 몇 달 뒤 중앙 정보국(CNI)으로 대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