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란의 최고 지도자인 알리 카메네이 아야톨라(86세)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16일 사망했다. 이 공격은 아이란 수도 테헤란 중심부의 그의 관저를 표적으로 삼았으며, 이로써 그가 36년간의 집권 기간을 마감하게 되었다. 이 기간 동안 아이란은 중동에서 주요한 반미 세력으로 성장했다.

혁명적 인물의 유산

1989년부터 집권한 카메네이는 초기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종교 지도자에서 이슬람 공화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로 성장했다. 그의 집권 기간 동안 아이란은 서방, 특히 미국의 영향을 억제하기 위한 군사적 및 정치적 존재로 성장했다.

국제 평화 재단 카르임 사자드푸르 분석가는 카메네이가 ‘약한 대통령에서 초기에는 약한 최고 지도자에서 지난 100년 동안 가장 강력한 5명의 아이란인 중 하나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카메네이의 지도력은 미국에 대한 치열한 반대로 정의되며, 특히 트럼프 정권이 2015년 핵 협정에서 철수한 이후 더욱 강화되었다. 그는 트럼프의 정책을 비판하고 미국을 ‘대마왕’이라고 비난했으며, 이는 아이란의 보수 세력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지역적 영향력과 내부적 도전

카메네이의 집권 기간 동안 아이란은 레바논의 헤즈бол라와 가자지구의 하마스 같은 조직을 지원하며 중동 전역에 영향력을 확장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이 영향력은 약화되었으며, 시리아 대통령 바시르 알 아сад의 축출과 아이란의 동맹국들이 겪은 군사적 패배로 인해 더욱 줄어들었다.

2024년, 카메네이는 22세의 아이란-쿠르드 여성 마하사 아미니가 도덕 경찰의 수감 중 사망한 이후 내부적 반발을 겪었다. 그는 시위대에 대한 단호한 탄압을 가하며 국가의 정치적 긴장을 더해갔다.

카메네이의 집권 기간 동안 아이란은 세타드 조직을 통해 수십억 달러 규모의 자산을 축적하며 금융 제국을 확장했다. 그는 혁명 경비대와 군대를 통제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강화했으며, 아무도 그의 권위를 도전할 수 없도록 했다.

최후의 날과 그 후

카메네이를 죽인 공격은 아이란과 미국 간의 지속적인 외교적 긴장 속에서 이루어졌다. 14일까지 협상이 이루어졌으나, 미국 관료들은 아이란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포기하지 않아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이 프로그램이 아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이란 국가 통신사에 따르면, 카메네이는 그의 테헤란 중심부 관저를 표적으로 삼은 공격으로 사망했다. 이 공격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에서의 하마스 전쟁과 그 후의 미사일 교환을 포함한 일련의 갈등 이후 수십 년 만에 이루어진 미국과 이스라엘의 가장 대규모 공격이다.

카메네이는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거부하며 워싱턴이 지역의 종파 갈등을 악화시키기 위해 이슬람 국가를 지원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1990년대 중반에 핵무기 생산 및 사용이 이슬람 원리에 위배된다고 선언하는 지침을 발표했다.

카메네이의 사망은 아이란의 지도부에 불확실성을 몰고 왔으며, 내부적 반발이 커지고 국가가 예상치 못한 군사적 및 외교적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은 지역에서 새로운 갈등 시대의 시작을 알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