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베트남전 당시 중대한 화재 속에서 동하교를 혼자서 파괴한 해병대 소령 존 리플리가 사후 명예 훈장 수상이 결정됐다. 상원은 특별법을 승인해 수상 절차를 진행했으며, 최종 승인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남아 있다.

용감한 다리 파괴

1972년 4월 2일, 리플리 당시 소령은 북베트남군의 진격을 막는 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쿠아비엣 강 지역을 통해 이동하는 두 적군 부대를 정지해야 했다. 그가 속한 해병대 부대는 갑작스럽게 북베트남군의 진격에 직면하게 되었으며, 그들의 탱크보다 큰 탱크와 무거운 장비를 동반한 적군과 맞붙게 됐다.

해병대 국립박물관에 따르면, 리플리는 동하교 아래에서 3시간 동안 폭약을 설치하며 적군의 진격을 지연시키기 위해 다리 아래에 매달려 있었다. 이 시간 동안 그는 반대쪽 강둑에서 스나이퍼의 화재를 받았고, 이후 자신의 위치를 향해 발사한 탱크의 포탄이 강둑에서 반사되어 폭발했지만, 그는 임무를 계속 수행했다.

리플리는 태스크 앤드 푸어스(TASK & PURPOSE)가 보도한 미국 해군연구소(U.S. Naval Institute)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다리 아래에 매달려 폭약을 가득 채운 채 팔로 잡고 매달려 있다. 강철 구조물에서 떨어져 내려가며 I형 강철의 베어링을 잡고 측면으로 휘두르며 강을 건너는 식으로 이동했다.’고 회상했다.

3시간 동안 리플리는 강을 5차례 건너며 결국 다리에 227킬로그램의 폭약을 설치했다. 그의 행동은 북베트남군의 진격을 지연시키며 해군십자 훈장을 받게 했으며, 현재는 그의 영웅성을 인정해 명예 훈장으로 승격을 요구하는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장군의 군사적 성과

존 와일터 리플리는 1939년 6월 29일 버지니아 주 라드포드에서 태어났다. 그는 1957년 라드포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년간 해병대에 입대한 후 미국 해군대학에 입학했다. 그는 전기공학 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1962년 6월에 해병대 소위로 임관했다.

리플리는 USS 인디펜던스 호의 해병대 부대에 배치되었으며, 1963년 12월에 중위로 승진했다. 이후 그는 1971년 베트남으로 다시 돌아가, 다방에서 경험 많은 전문적인 장교로 활동하며 베트남과 다른 지역에서 10년간의 전문적인 훈련과 전투 임무를 수행했다.

리플리는 1992년 해병대 대령으로 은퇴했으며, 군 복무 이후 버지니아 주의 작은 대학의 총장으로 일했고, 이후 해병대 역사 및 박물관 분과의 이사로 활동했다. 그는 2008년 미국 육군 랭커스 훈장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수십 년 만의 인정

리플리의 베트남전 시기 행동은 용기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그의 동료 해병대원들, 친구들, 옹호자들은 오랫동안 해군십자 훈장을 명예 훈장으로 승격해 줄 것을 요구해 왔다. 상원의 최근 특별법 승인은 이 요청을 이행하는 데 중요한 단계이다.

상원은 수상 절차를 진행했지만, 최종 승인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남아 있다. 승인되면 리플리에게 사후 명예 훈장이 수여될 예정이다. 그는 2008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이 훈장은 베트남전에서 그의 뛰어난 용기와 희생을 기리는 적절한 예가 될 것이다.

리플리의 이야기는 베트남전에서 군인들이 희생한 것을 상기시키는 강력한 경고이다. 그의 행동은 적군의 진격을 지연시켰으며, 미래 세대의 해병대원과 군인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국가가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그의 용기의 인정은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이들을 기리는 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