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 명이 목요일에 세우타로 넘어왔고, 금요일 새벽까지 계속된 이민 물결이 이어졌습니다.
세우타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나요?
대부분은 해상으로 수영하거나 소형 보트를 타고 국경 펜스를 피했습니다. 일부는 국경 통과 지점을 몰려들어 경비대를 압도했습니다. 다른 이들은 국경 펜스를 지탱하는 방파제를 타고 오르려다 최소 67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이민 물결은 왜 발생했나요?
세우타 당국은 7월에 발표된 스페인 최고재판소 판결이 이민자들의 몰려오기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판결은 해상으로 도착한 이민자를 즉시 귀환시키는 것을 금지했지만, 펜스를 넘어 육로로 들어온 이민자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이론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북아프리카 이민 문제를 전문으로 다루는 스페인 기자 이그나시오 세메브로는 AFP에 “7월 8일 판결이 분명히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이 정도의 대규모 이동을 설명하진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스페인의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인신매매 조직이 이 판결의 중요성을 과장해 수많은 이민자들이 세우타로 대규모로 몰려오도록 유도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일부는 모로코가 이 사건을 조직하고 이민자들의 국경 침입을 용이하게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세우타는 왜 중요한가요?
세우타는 북아프리카 모로코와 접한 스페인의 자치 도시입니다. 멜리야와 함께 유럽 연합과 아프리카 간 유일한 육로 국경입니다. 1415년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고 1580년 스페인에 편입되었습니다. 1640년 포르투갈이 독립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우타는 스페인의 지배를 유지했습니다. 아프리카의 식민지 해방 이후 세우타와 멜리야는 유럽이 아프리카 대륙에 남아 있는 유일한 영유권 지역입니다.
이 지역은 높은 국경 펜스, 감시 시스템, 스페인의 민병대와 국가 경찰의 상주 배치로 보호받고 있습니다. 위치상 유럽으로 가려는 이민자와 난민들의 주요 진입로 중 하나입니다.
모로코는 세우타와 멜리야에 대한 마드리드의 수세기 동안의 영유권을 인정하지 않고, 이들을 점령지로 보고 있습니다. 또한 모로코는 서사하라에 대한 자신의 영유권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1975년 스페인의 식민지였다가 모로코가 합병한 곳입니다. 이 지역 주민들은 폴리사리오 전선을 통해 라바트의 통제에 반대하며 독립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2021년 4월, 마드리드는 모로코가 반란군 지도자 브라힘 가일리가 코로나19 치료를 위해 스페인 병원에 입원하도록 허용했습니다. 이에 모로코는 강한 불만을 표시했고, 가일리를 범죄자로 간주합니다. 모로코는 스페인에 주재원을 회수했고, 5월에는 국경 통제를 완화해 약 1만 명의 이민자가 세우타로 들어오도록 허용했습니다.
지난달, 산체스 총리가 모로코의 적대국으로 여겨지는 알제리에 공식 방문했고, 이로 인해 마드리드와 라바트의 관계가 다시 악화되었습니다. 일부는 세우타의 최근 사건이 모로코가 다시 스페인에 경고를 보내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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