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 파튼이 8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그녀의 조카 브라이언 세이버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사망 소식을 알렸다. 그녀는 ‘조린’과 ‘I Will Always Love You’ 등 히트곡으로 음악과 문화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초기 생활과 겸손한 출발

도리 파튼은 1946년 1월 19일 테네시 주 세비어 카운티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부모님과 11명의 형제자매가 어려운 환경에서 생활했다. 그녀의 부모님이 그녀의 출생 비용을 옥수수 가루나 보리로 대신했다는 소문이 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그녀는 음악이 풍부한 환경에서 자랐다. 7세 때 기타를 치기 시작했고, 10세에 텔레비전 데뷔를 했다.

그녀의 초기 경력은 1960년대 내슈빌에서 시작됐다. 당시 음악 산업은 남성 중심이었다. 그녀의 첫 차트곡 ‘Dumb Blonde’는 1967년 1월 21일 발표됐으며, 제목뿐만 아니라 ‘이 바보 같은 블론드는 아무도 속이지 못한다’는 강한 메시지도 담겨 있었다.

수상과 건강 문제, 봉사 활동

60년 이상의 경력 동안 도리 파튼은 미국 카운트리 차트에서 25곡의 1위를 기록했으며, 1억 장 이상의 음반을 판매했다. 그녀는 11개의 그래미 상, 3개의 에미 상, 그리고 케네디 센터 상을 수상했다. 그녀는 카운트리 음악 명예의 전당과 록 앤 롤 명예의 전당에 동시 입회했다.

성공을 거두었지만, 최근 몇 년간 건강 문제를 겪었다. 그녀는 건강 문제로 9월에 플래닛 라스베이거스 공연 일정을 취소했으며, 2024년 5월에는 면역계와 소화기계, 신장 결석 문제로 인해 2024년에서 2026년으로 투어를 연기했다.

그녀의 봉사는 음악만큼이나 영향력 있었다. 1995년 아버지를 기려 아동 문해율 향상에 기여하기 위해 도리 파튼의 이마지네이션 라이브러리(Imagination Library)를 창립했다. 이 프로그램은 전 세계 어린이에게 3억 권 이상의 책을 무료로 배포했다. 파튼은 테네시 주에 있는 도리월드(Dollywood)라는 테마파크도 설립해 지역 사회를 지원했다.

유산과 추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루스 소셜(Truth Social)을 통해 도리 파튼을 대체할 수 없는 인물로 칭하고, 그녀의 명예를 위해 미국 국기를 일주일간 반건으로 게양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그녀를 ‘전에 없고 다시는 없을 인물’이라고 표현했다.

도리 파튼의 별세는 음악을 넘어 패션, 영화, 인도주의 활동에까지 영향을 끼친 경력을 마감했다. ‘9 to 5’와 ‘I Will Always Love You’ 같은 그녀의 곡들은 문화적 아이콘으로 남았다. 휘트니 휴스턴이 1992년 발표한 ‘I Will Always Love You’ 버전은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히트곡 중 하나가 됐다.

한국 매체 하이프비스트(KR)에 따르면, 도리 파튼은 5세 때 곡을 쓰기 시작했고, 13세에 그랜드 올 프라이데이에 데뷔했다. 그녀의 음악, 영화, 테마파크는 전 세계 문화 아이콘으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했다.

그녀의 유언에 따라 사생활을 중시하는 대로 사적인 장례식이 열릴 예정이며, 가까운 가족만 참석할 예정이다. 조카 브라이언 세이버는 그녀가 수많은 아티스트와 꿈을 꾸는 사람들에게 남긴 영향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