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인권 운동에 기여한 미국의 여성운동가이자 저널리스트인 글로리아 스테인엄이 13일 뉴욕에서 9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그의 사망 소식은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전했다. 사망 원인은 공개되지 않았다. 인스타그램 게시물은 ‘글로리아 스테인엄이 뉴욕 집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평온하게 별세했다’고 전했다.

운동과 저널리즘의 유산

1960년대, 여성들이 주로 가정 내 역할에 제한되던 시기에 스테인엄은 성별 편견을 도전하며 여성 평등, 여성 연대, 생식 자유 같은 여성주의 이념을 옹호했다. 그의 활동은 수많은 여성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오늘날 그는 여성 인권 운동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2013년, 바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스테인엄에게 여성 인권 운동에 대한 공로를 인정해 대통령 자유메달을 수여하면서 ‘그녀의 활동 덕분에 미국과 전 세계 여성들이 마땅한 존중과 기회를 누리고 있다. 그녀는 여성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바꾸었다’고 말했다.

초기 생애와 영향

스테인엄은 1934년 오하이오 주 톨레도에서 태어났다. 스미스 대학에서 정치학 학사 학위를 받은 후 1956년 졸업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그는 인도에서 2년간 펠로십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캐스트 폭력에 반대하는 운동을 조직하는 사람들과 함께 여행하고 인도 매체에 기고했다. 그는 이 경험을 미국에서의 활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인도에서 돌아온 후, 그는 미국 학생들을 소련 주도의 청소년 축제에 보내 미국의 가치관을 홍보하도록 지원하는 CIA 후원 단체에 잠시 참여했다. 이는 이후 일부 여성주의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었다.

저널리즘 기여와 ‘Ms. 매거진’ 창간

스테인엄은 1963년 허그 헤이너너의 플레이보이 클럽에서 ‘플레이보이 베이비’로 위장 취재를 하며 노동 조건을 폭로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는 이후 기사가 자신의 경력을 해칠까 우려했다. 당시 유명 작가인 게이 탈레세와 사울 벨로우는 그를 ‘이해를 가진 아름다운 여자’라고 묘사하며 ‘작가를 가장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스테인엄은 여성들이 중절 수술을 받는 과정에서 겪는 모욕과 위험에 대해 논의하는 여성 그룹을 취재하면서 여성주의가 자신의 삶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그는 결국 기사가 가치 있었다고 결론 내렸다.

스테인엄은 1971년 여성들이 쓰고 여성들을 위한 ‘Ms. 매거진’을 창간했다. 이 잡지는 미용, 요리, 남편을 돕는 것 등 여성들을 위한 전통적인 주제와는 달리 낙태, 성차별, 평등 임금, 가정 폭력 같은 문제를 다뤘다. 초기 호에서는 낙태 경험이 있는 유명 여성들을 공개적으로 발표한 특집 기사도 있었다. 스테인엄 자신도 포함되었다.

스테인엄은 여성들의 정치 참여를 늘리기 위한 전국 여성 정치 커넥터 그룹, 다문화적이고 비성차별적인 어린이 교육에 중점을 둔 여성 행동 동맹, 여성 미디어 센터를 창립하는 데도 기여했다.

‘차별을 겪은 사람은 모든 수준에서 민감하다. 나는 주로 흑인 여성들로부터 여성주의를 배웠다. 인종 차별을 받는 여성들이 기본적으로 여성주의를 창조했다’고 그는 뉴요커에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