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평민가수 비토르 자라가 살해된 지 50년이 넘은 시점에서 그의 죽음과 관련된 마지막 용의자가 체포돼 재판을 받았다.

전역 병장 넬슨 하세 마체이 체포

넬슨 하세 마체이 전 병장은 2023년 자라와 다른 남성의 살해로 유죄 판결을 받은 뒤 도주했다.

칠레 경찰은 2026년 1월 주말에 하세 마체이가 농촌 남부 지역인 푸예후에에서 체포됐다고 발표했다. 재판관은 즉시 구속을 명령했다.

비토르 자라 재단은 성명을 통해 “2023년부터 정의를 피해 도망쳤던 전 병장 넬슨 하세 마체이가 체포되고 구속된 소식을 접했다. 이 소식을 환영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자라와 리트레 퀴로가가 살해된 지 5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을 정의라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1973년 살해 사건 배경

자라는 1973년 9월 11일, 미국의 지지 아래 사회주의 대통령 살바도르 알렌데를 축출한 피노체트의 쿠데타 다음 날,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체포됐다.

자라는 산티아고 중심부의 작은 덮힌 경기장에서 수천 명과 함께 구금됐다. 4일 뒤, 그는 경기장의 화장실에서 알렌데 정부의 교도소장 리트레 퀴로가와 함께 살해당했다.

하세 마체이의 체포는 자라의 죽음에 대한 오랜 정의를 위한 마지막 단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자라는 피노체트 독재 정권의 가장 유명한 희생자 중 한 명이다. 이 정권은 17년 동안 3,000명 이상을 살해하거나 실종시키고 수만 명을 구금하고 고문했다.

경기장에서 자라는 경찰관들에게 고문과 모욕을 당했다. 그들에게 러시아 룰렛을 하게 했고, 손을 부러뜨리고 두개골을 부수고 자동화기를 쏘아 죽였다.

자라의 시신은 산티아고 주요 공동 묘지 근처에서 44발의 총탄과 56개의 골절로 발견됐다. 그는 당시 40세였다. 퀴로가의 시신도 같은 시기에 발견됐는데, 그는 23발의 총탄을 맞은 채로 발견됐다.

반세기 동안의 정의 요구

반세기 동안 정의를 회피한 7명의 전역 병장은 2023년 8월 자라의 살해로 유죄 판결을 받고 각각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하세 마체이는 2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수년 동안 경기장에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서약한 증언으로 그를 현장에 있었던 것으로 판명됐다.

하세 마체이는 1972년 칠레 군대의 유명한 테하스 베르데 부대에 입대했고, 이후 피노체트의 비밀 경찰인 디나(DINA)에 합류했다. 그는 디나의 수장인 마누엘 콘트레라스와 밀접하게 일했다. 콘트레라스는 2015년 사망하기 전 인류학적 범죄로 500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정권 충성파였다.

하세 마체이와 함께 유죄 판결을 받은 86세의 페르난도 차콘은 2023년 경찰이 산티아고의 부유한 지역에서 체포하려고 찾아갔을 때 약을 복용하라고 경찰관에게 요청한 뒤 옆방으로 사라져 자살했다.

또 다른 테하스 베르데 부대 소속 병장인 페드로 바리엔토스는 1989년 칠레를 떠나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가 2023년 12월에 귀국했다. 이는 그의 인도적 구속이 첫 요청된 지 10년이 넘은 시점이다.

한 전 병장은 바리엔토스가 총을 드리며 “이 총으로 비토르 자라를 쐈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바리엔토스는 미국에서 단순한 교통 위반으로 체포된 뒤 미국 시민권을 박탈당했다. 이는 그의 범죄 때문이 아니라, 군 복무 경력을 신청서에 누락시켰기 때문이다.

자라의 아내는 바리엔토스가 칠레로 귀국한 지 몇 주 만에 96세에 세상을 떠났다.

하세 마체이의 변호인단은 이미 그를 남부 도시 오소르노에 있는 감옥에서 산티아고 북쪽에 위치한 푼타 페우코 감옥으로 이동하길 요청했다. 이 감옥은 피노체트 시대 인권 범죄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설계된 곳이다.